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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문자해득 교육 강사 문해교사 체험수기 공모 최우수상 수상

작성일 : 2021.12.27  |  조회수 : 3527

성인문자해득 교육 강사 문해교사 체험수기 공모 최우수상 수상

 성인문자해득 교육사업 중급반을 수업하고 있으신 노춘희(76세) 강사님께서 ‘2021년 제7회 문해교사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노춘희 강사님께서는 “성인문자해득 교육을 적극 지원해준 하남시와 하남시종합사회복지관에 각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더 열심히 봉사하겠다"라고 소감을 남겨주셨습니다. 아래에 최우수상을 수상한 《알알이 엮은 그림 같은 이야기》를 첨부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알알이 엮은 그림 같은 이야기》 - 노춘희

코로나 19의 창궐로 방학이 거의 1년이 훨씬 넘었다. 그동안 배웠던 것도 다 잊어버렸다고 언제쯤 공부하느냐는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올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따라서 나 또한 온 세상과 모든 생활이 정지상태가 되자 우울증이 올 것 같았다.

나는 일 없이 산에만 오가다가 ‘위기가 곧 기회’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에 편입하였다. 어르신들에게 나도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보여 드리고 공부하는 모델이 되고 싶었다. 열심히 배워서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어르신들과 동시대를 살아온 세월의 늪에 함께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려요.’라고 하시던 말씀이 오롯이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드디어 3월부터 수업을 재개하였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었던가. 모두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은 눈으로만 볼 수 있고 입과 코는 마스크로 가리고 손 한번 꼭 잡아드리지 못한 아쉬움을 바로 2m 거리의 눈앞에 두고 봄, 여름이 지나 가을이 곱게 물들어 깊어가고 있다.

지난봄 제17회 성인문해학습자 백일장 대회에 참여하여 영광스럽게 두 분이 뽑혔다.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복지관에서 제575주년 한글날을 기념하여 학습자들의 우수작품으로 시화 전시회를 열어주었다.

협회에서 입상한 두 분의 작품은 시청에도 전시를 한다고 하여 기쁨이 두 배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시화전 화폭에서 오롯이 살아서 오소소 걸어 나와 재잘재잘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한 글자 한글 자마다 삶의 질곡에서 살아온 아픔과 슬픔이, 그리움 되어 실꾸리에서 실이 풀려 나오듯 술술 풀려 나왔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 아들로 태어나서 고맙다. 선생님 덕분에 오래전부터 마음으로만 간직했던 꿈이 이루어졌어요. 한글이 어렵고 힘들었으나 점차 글씨를 쓰고 읽을 수 있어서 제 자신도 놀랍고 신기하고 뿌듯합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해 줄게. 30년을 식당일을 하다가 위암 판정 받았을 때의 암담했던 시절, 큰 수술을 받고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건강을 회복하고 하남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내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어 너무 행복하단다.

평생 처음으로 나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공부하게 된 내가 기특하여서 내 손을 쓰다듬으며 나를 칭찬한다.

스스로 자신을 다독 거리며 자기를 찾아가는 모습.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으로 건강한 자신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봄 노래로 이야기를 풀어놓은 시어들이 산새들과 오순도순 나누는 봄날에 시인의 정서가 메마른 우리들 가슴에 아름다운 꽃 향기가 백리에 진동한다.

아들이 공군사관학교에 시험 보러 갈 때 용돈 한 푼 줄 수도 없이 가난했던 시절을 소환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가 하면, 결혼할 때 중학교 졸업했다고 거짓말했던 중매쟁이의 말 때문에 평생을 내 목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하고 숨 죽여 살아온 세월의 강가에서 핸드폰으로 문자나 카톡을 보낼 때 받침이 틀릴까 봐 걱정되어서 배우러 왔다는 L 님의 목소리가 커졌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코로나라는 역병에 사랑하는 남편과 아픈 이별을 고하고 시름없이 지내다가 복지관에 찾아오신 용기 있는 분은 ‘잘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하신 Y어르신, 슬픔을 딛고 홀로서기에 애쓰시는 모습은 얼굴에 나타내지 않고 묵묵히 가슴 밑바닥 깊숙이 묻어 놓고 홀로 아픔을 치유해 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우린 함께 지난날의 고운 추억 여행을 떠난다.

수업 시간도 행복했지만 쉬는 시간에 고구마, 부침개, 삶은 달걀, 또 어느 날은 갖가지 나물에 찰밥을 지어오기도 하고, 도토리묵을 맛있는 양념장에 얹어 먹었던 지난날 들.

수업시간보다 눈과 입이 더 즐거운 간식 시간에 활짝 핀 꽃 같은 어르신들의 나날들, 철 따라 나오는 제철과일들을 서로 나누어 먹었던 소박한 추억을 그리워하며 언제 그런 날이 다시 올지, 지난 1년을 코로나의 역병에 도둑맞은 날들을 어떻게 보상 받을까? 기약 없는 삭막한 날들을 싹 날려버리고 하루 속히 옛날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잃어버렸던 지난 1년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어르신들의 영롱한 눈망울을 보며 나는 내 몸이 찌뿌둥할 때도 수업시간은 늘 신 들린 듯 즐겁다. 더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어르신들에게 모두 나눠 드려도 남는 장사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문해교사다. 나는 내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하늘이 부를 때까지 우리 어르신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공부하는 아름다운 동행이 되고 싶다.

가을이 깊어간다. 아름다운 단풍은 봄꽃보다 더 아름답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아름다운 이 가을을 멋지게 장식하는 단풍잎처럼 함지박에 소복소복 담긴 어르신들의 고운 미소가 곱게곱게 익어 가고 있다.